기다리시는 하나님
작성자
odbkorea
작성일
2016-06-15 13:39
조회
1945
거룩하지도 의롭지도 않으며 탕자처럼 세상에서 방황하던 나를 주님은 기다려 주셨다. 죄로 물든 내 모든 것들을 씻기시고 구원의 옷으로 깨끗하게 갈아 입혀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내 모습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내가 하나님 앞에 돌아 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셨다. 아무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무언가를 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교회 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 새벽 종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 종소리를 좇아 오릿길이나 되는 교회로 달려가곤 했던 아름다운 철부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렐루야교회처럼 그 교회도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새벽에 교회 가는 길은 캄캄하기만 했다. 아주 어린 시절이어서 그런지 지금은 그 교회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그 곳에 가서 무슨 기도를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우리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며 기도했던 나는 무슨 까닭에 교회와 하나님의 손에서 살그머니 빠져 나와 세상과 믿지 않는 친구들을 좋아했을까?
하루 이틀 교회를 빠지다 보니 세상이 점점 좋아져 가고 믿지 않는 친구들이 더욱 재미가 있었다. 세상을 좋아했고 사랑했기에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믿지 않는 가정의 7남매의 장남과 결혼을 해 삼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남편은 공무원이었으나 술독에 빠진 자처럼 매일 술을 마셨고 월급은 술값으로 다 나가고 월급봉투는 비어있었다.
은빛날개에 꿈을 가득 싣고 날려고 했던 것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내 앞에는 불안과 초조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살림살이는 구차해지고, 고통과 어려움만이 내가 자고 깨어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며 찾아왔다. 이런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물질의 고통만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남편이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아이들은 옆집에 맡겨 놓은 채,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울고 얼마나 많은 생각들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고 숨이 막혀온다. 나의 생활은 더욱 암담해지고 환경이 바뀌어 어려운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지만 왜 이런 고통이 내게 다가 왔는지 조차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키고 계셨다는 듯이 친구에게 사랑의 복음을 들려 나에게 보내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져 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려보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마음은 교만하고 완악해져 주일이면 그렇게도 함께 교회에 가기를 원했던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밉게만 느껴졌는지…. 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나를 바라보는 친구 눈빛은 불쌍하다는 듯 아무런 말없이 돌아가곤 했지만 이 불쌍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얼마나 부르짖으며 안타까워했을까….
어리석고 힘겨웠던 세월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가을날 수요 저녁예배 준비 종소리가 내 가슴속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종소리는 바로 내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더욱 가깝게 들리고 가슴은 뜨거워지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게 무슨 일일까. 고통과 외로움으로 지쳐있는 내 마음은 그때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교회를 향하여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기기 시작했다. 교회에 도착하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었고 그렇게 전도하기 위해 애썼던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축복해 주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반항과 욕심과 교만으로 채워져 숨조차 쉴 수 없으리만큼 죄인의 모습이었지만 넓으신 가슴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는 주님을 그날 밤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시인하여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하나씩 정리되어 갔고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뀌어 갔다. 탕자처럼 방황하던 나를 주님은 사랑으로 택하시고, 무거운 죄를 사하여 주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시었다.
할렐루야교회에 등록한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남편의 건강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셔서 지금은 예수님 영접하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선교사역과 문서사역을 위해 나름대로 봉사하고 있다. 주님을 믿지 않던 친정식구들도 모두 장로님과 권사님으로 헌신하고 있으며, 시댁식구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주님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나는 10년 전 서울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 충북 음성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주일날이면 첫 차를 타고 할렐루야교회에 가는 그 설렘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늘의 양식’ 책자를 가져다가 교회와 병원 또는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조금이나마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양식’을 전하고 있다. ‘오늘의 양식’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의 옛 주소인 어둠의 왕국에서 새 주소인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거주지가 바뀌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에게도 ‘오늘의 양식’은 날마다 생활의 안내자이자 위로의 지팡이다. 마음이 착잡하고 고통이 앞길을 막을 때 ‘오늘의 양식’을 펼쳐 들고 삶속에 날마다 찾아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며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효순(권사, 할렐루야교회)
내 모습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내가 하나님 앞에 돌아 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셨다. 아무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무언가를 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교회 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 새벽 종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 종소리를 좇아 오릿길이나 되는 교회로 달려가곤 했던 아름다운 철부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렐루야교회처럼 그 교회도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새벽에 교회 가는 길은 캄캄하기만 했다. 아주 어린 시절이어서 그런지 지금은 그 교회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그 곳에 가서 무슨 기도를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우리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며 기도했던 나는 무슨 까닭에 교회와 하나님의 손에서 살그머니 빠져 나와 세상과 믿지 않는 친구들을 좋아했을까?
하루 이틀 교회를 빠지다 보니 세상이 점점 좋아져 가고 믿지 않는 친구들이 더욱 재미가 있었다. 세상을 좋아했고 사랑했기에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믿지 않는 가정의 7남매의 장남과 결혼을 해 삼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남편은 공무원이었으나 술독에 빠진 자처럼 매일 술을 마셨고 월급은 술값으로 다 나가고 월급봉투는 비어있었다.
은빛날개에 꿈을 가득 싣고 날려고 했던 것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내 앞에는 불안과 초조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살림살이는 구차해지고, 고통과 어려움만이 내가 자고 깨어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며 찾아왔다. 이런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물질의 고통만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남편이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아이들은 옆집에 맡겨 놓은 채,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울고 얼마나 많은 생각들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고 숨이 막혀온다. 나의 생활은 더욱 암담해지고 환경이 바뀌어 어려운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지만 왜 이런 고통이 내게 다가 왔는지 조차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키고 계셨다는 듯이 친구에게 사랑의 복음을 들려 나에게 보내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져 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려보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마음은 교만하고 완악해져 주일이면 그렇게도 함께 교회에 가기를 원했던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밉게만 느껴졌는지…. 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나를 바라보는 친구 눈빛은 불쌍하다는 듯 아무런 말없이 돌아가곤 했지만 이 불쌍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얼마나 부르짖으며 안타까워했을까….
어리석고 힘겨웠던 세월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가을날 수요 저녁예배 준비 종소리가 내 가슴속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종소리는 바로 내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더욱 가깝게 들리고 가슴은 뜨거워지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게 무슨 일일까. 고통과 외로움으로 지쳐있는 내 마음은 그때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교회를 향하여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기기 시작했다. 교회에 도착하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었고 그렇게 전도하기 위해 애썼던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축복해 주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반항과 욕심과 교만으로 채워져 숨조차 쉴 수 없으리만큼 죄인의 모습이었지만 넓으신 가슴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는 주님을 그날 밤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시인하여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하나씩 정리되어 갔고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뀌어 갔다. 탕자처럼 방황하던 나를 주님은 사랑으로 택하시고, 무거운 죄를 사하여 주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시었다.
할렐루야교회에 등록한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남편의 건강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셔서 지금은 예수님 영접하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선교사역과 문서사역을 위해 나름대로 봉사하고 있다. 주님을 믿지 않던 친정식구들도 모두 장로님과 권사님으로 헌신하고 있으며, 시댁식구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주님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나는 10년 전 서울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 충북 음성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주일날이면 첫 차를 타고 할렐루야교회에 가는 그 설렘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늘의 양식’ 책자를 가져다가 교회와 병원 또는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조금이나마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양식’을 전하고 있다. ‘오늘의 양식’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의 옛 주소인 어둠의 왕국에서 새 주소인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거주지가 바뀌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에게도 ‘오늘의 양식’은 날마다 생활의 안내자이자 위로의 지팡이다. 마음이 착잡하고 고통이 앞길을 막을 때 ‘오늘의 양식’을 펼쳐 들고 삶속에 날마다 찾아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며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효순(권사,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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