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2:1-9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구)1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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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 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10월 27일 •수요일
고난의 목적
성경읽기: 예레미야 12-14; 디모데후서 1
새찬송가: 94(통102)
오늘의 성경말씀: 욥기 42:1-9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욥기 42:7]
그러니까 제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나는 그녀의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나는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 강사로 초청되었고, 그날 아침에 나누었던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만성 질환이 있어서 낫기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고, 죄도 고백하고, 하라는 것은 모두 다 해봤어요. 하지만 병은 여전히 낫지 않아서 다 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녀의 고백을 듣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영적인 “공식”을 받았는데, 그 공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자 자신을 책망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고난에 대한 이같은 정형화된 접근 방식은 수 세대 이전에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그 공식을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고난은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욥이 그의 가축과 자녀들, 그리고 건강을 비참하게 잃어버렸을 때 친구들은 이 공식을 그에게 적용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죄를 의심하며 “정직한 사람이 멸망한 일이 있더냐?”(욥기 4:7, 새번역)라고 했고,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죽은 이유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8:4). 친구들은 욥에게 닥친 재난의 참된 이유도 모르는 채(1:6- 2:10) 단순한 논리만으로 그를 괴롭혔으며,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42:7).
고난은 타락한 이 세상의 삶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도 욥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견디는 고통 그 이상의 목적을 우리를 위해 갖고 계십니다. 단순한 공식에 빠져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난 = 죄”라는 공식이 또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왜 이 공식이 아직도 만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위대한 치료자이신 하나님, 고통받는 때에 상처 되는 말 대신 치유하는 말을 하게 하소서.
Wednesday, October 27
A Purpose In Suffering
Bible In A Year: Jeremiah 12–14; 2 Timothy 1
Today’s Bible Reading: Job 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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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ngry with you and your two friends, because you have not spoken the truth about me, as my servant Job has. [ JOB 42:7 ]
So what you’re saying is, it may not be my fault.” The woman’s words took me by surprise. Having been a guest speaker at her church, we were now discussing what I’d shared that morning. “I have a chronic illness,” she explained, “and I have prayed, fasted, confessed my sins, and done everything else I was told to do to be healed. But I’m still sick, so I thought I was to blame.”
I felt sad at the woman’s confession. Having been given a spiritual “formula” to fix her problem, she had blamed herself when the formula hadn’t worked. Even worse, this formulaic approach to suffering was disproved generations ago.
Simply put, this old formula says that if you’re suffering, you must have sinned. When Job tragically lost his livestock, children, and health, his friends used the formula on him. “Who, being innocent, has ever perished?” Eliphaz said, suspecting Job’s guilt (JOB 4:7). Bildad even told Job that his children only died because they had sinned (8:4). Ignorant of the real cause of Job’s calamities (1:6-2:10), they tormented him with simplistic reasons for his pain, later receiving God’s rebuke (42:7).
Suffering is a part of living in a fallen world. Like Job, it can happen for reasons we may never know. But God has a purpose for you that goes beyond the pain you endure. Don’t get discouraged by falling for simplistic formulas. SHERIDAN VOYSEY
How else do you see the “suffering = sin” formula being used? Why do you think it’s still so prevalent?
Great Physician, give me words to heal, not hurt, in times of pain.
겸손해야한다.. 믿음으로 은혜를 구해야한다
하나님을 1/1000, 1/10,000 도 모른다
그러면서 아는척하고 이렇게 저렇게 ….
아는만큼 믿고, 행동하게 되어있다 평생공부해야한다
위대한 치료자이신 하나님, 고통받는 때에 상처 되는 말 대신 치유하는 말을 하게 하소서. 고난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정죄와 비난, 비판과 질시의 말보다 위로와 격려, 희망과 응원의 말을 할 수 있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소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도 주시옵소서.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지혜와 건강을 주사 평안 가운데 담대함으로 시험을 준비하게 하소서. 위드 코로나 정책이 잘 수립되어 모든 사람들이 속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버지 하나님. 저에게 다가오는 현재의 상황과 고통의 이상으로 선하신 아버지의 목적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직 주만이 나의 상급이요 분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위대하신 당신을 오늘도 찬양합니다. 오늘도 나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의 구원이시이다….아멘.
아프더라도 아바만 계셔주신다면야 고통의 통증을 참을 용기가 생깁니다. 신기하게도요. 깨닫게 하시고 거듭 깨닫게 하시어 앎이 온전해져 갑니다. 아프지만요. 정말 죄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요. 생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요. 무엇이 내 생각에 쌓이고 쌓여서 아바의 생각과의 거리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 먼지와 티끌 위에 앉습니다. 스스로요.
아버지. 사랑하는 형을 데리고 가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 형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솔직하지 못했는데도요. 형은 아마 알았어도 모르는 척의 지혜로 저를 기다리듯 사랑해주었어요. 제 영혼은 형의 영혼을 아니까요. 온전히는 최근에서야 더욱 깨닫게 되었구요. 좋은 믿음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지 않는 저라도 그런 부모님응 가진 최근에 알게 된 뮤지션들을 부러운듯 바라보면서 이런 제 옆에서 조용히 말씀하시는 주님은 내가 니곁에 있잖니. 너무 부러워만 하지 말아라 하십니다. 예. 주님. 주님이시니까요. 늘 증명하시니까요. 한번도 단 한번도 주님이 아니신 적이 없으시니까요. 그러나 주님. 부러운 것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주님. 늘 집밖의 가로등 아래에서 밤새 시험공부를 하였고 늘 100점을 주셨어요. 그래서 학창시절 때 늘 1등을 했었어요. 그래서 의사의 꿈도 키웠었구요. 그래서일까요? 쵝오의 의사 수현이 형의 관심과 사랑을 의사후배로서가 아니라 먼저 그의 형제 자매로써 받을수 있게 하셨어요. 이제는 정말 좋은 의사됨이 무엇인지를 의사지망생이 아닌 지금에도 배우게 됩니다. 진짜 교육은 이런게 아닐까요?
저를 좋은 방향에 두시고 지금껏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욥을 배우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나
난 또 우울해요. 아직도요. 최선을 다해 우울할 겁니다. 제 의로움의 목마름에 집중하기보다는 제 연약함에 솔직하게 저를 싫어하면서도 저를 받을수 밖에 없는 그릇된 생에 집중해서 또 뵈려구요. 그리하여 어느새 자유로운 날개짓을 해보려구요. 그래서 이야기해주려구요. 아버지의 사랑하심을요.
너덜너덜한 몸뚱이만 남은 욥이 하마와 악어를 보고 나서야 마침내 무지함과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한다 이것이 섬뜩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욥과 같이 성실하면 십자가의 복음에 더 가까이 갈수 있다
긴장히 성경만 보는 무기한 자가격리 중 ,아침 운동시간을 이용해 영어 읽기쓰기 좀 되는 직장인을 하나 포섭했는데 그만 폰을 안들고 가서 .등 일을 좀 했지요 천천히 트럼프보다 준비 더 잘 해야 되요
주님! 의로운 욥이 불의한 고난을 받자 주변의 친구들은 “죄=고난”이라는 인과 응보의 법칙만으로 욥을 몰아갔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욥은 급기야 하나님께 왜 자신이 불의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를 물으며 하나님의 정의에 대하여 강한 이의를 제기합니다. 급기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의 말씀과 질문에 답하지 못한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라고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게 됩니다.결국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지혜와 권능을 직접 체험하고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때론 알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닥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써 고난을 이겨나가는 말씀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주님!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는 못해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매일 들으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42:2)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19-20)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얽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We don’t know about causing cause of the suffering, but we know that God wants us to come out of pain. Because GOD doesn’t want us remain in trouble. Never think our tragedy come by God, but if is, it has to purpose for us to go through it, if it does. What did God tell to Job’s friends when they accused Job: verse 7 says, “After the Lord had said these things to Job, he said to Eliphaz the Temanite, “I am angry with you and your two friends, because you have not spoken the truth about me, as my servant Job has.”
•적용: 우리는 고난의(苦難 くなん suffering) 이유를(理由 りゆう cause)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는것을 원하지(願 ねがう want) 않는다것을 안다. 비극적인 일이(悲劇的 ひげきてき tragedy)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렇지만 만약 그렇다면 목적이(目的 もくてき purpose) 있을것 아닌가. 욥의 친구들이 욥을 참소하는(讒訴 ざんそ accuse) 말이다: 7 절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고난의(苦難 くなん suffering)
•이유를(理由 りゆう cause)
•원하지(願 ねがう want)
•비극적인 일이(悲劇的 ひげきてき tragedy)
•목적이(目的 もくてき purpose)
•참소하는(讒訴 ざんそ accuse)
God. Suffering seems like a consequence at times in the world. It feels like what I have done has led to this. Others times I see suffering in others through no fault of their own. With Job, his suffering had a purpose. It’s a reminder that your plan for us may not seem like the clearest path but there is a reason for it. Let me be compelled to reach out to you heal rather than blame you for my anguish. Amen.
고난과 고통이 죄 때문이라고 나의 죄가 아니더라도 부모나 조상의 죄로 받는거라고 . 그러나 또 누구나 아는 보이는 죄를 짓고도 세상적으로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참 많이 답답해요 내가 겪는 이 고난의 시간들은 잘 연단되어 정금같이 될 것이란 믿음을 가져봅니다
고민되시죠? ㅎㅎ 공감해요. 아바아버지를 알아가면 이점에 대해 생각됨에서 하늘의 생각이 도래하기를 바래요. 성령님께서 알게 하시려고 하시고 계실 꺼에요. 기도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