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4-21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구)2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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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10월 24일 •주일
말하고 믿고 느껴라
성경읽기: 예레미야 3-5, 디모데전서 4
새찬송가: 288(통204)
오늘의 성경말씀: 로마서 8:14-21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로마서 8:15]
프레드릭 뷰크너는 그의 충격적인 회고록 ‘비밀을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지 말고, 믿지 말고, 느끼지 말라는 것이 우리 가족이 살아온 법이었으며, 그것을 어긴 사람은 화를 면치 못했다.” 뷰크너는 그가 “각종 이유로 몰락하게 된 가족들의 불문율”이라고 부르는 이것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뷰크너는 자기 집안에서도 그 “법”의 영향으로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말하거나 슬퍼할 수조차 없었고, 누구와도 아픔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당신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상처받은 것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침묵을 요구받는 왜곡된 사랑 가운데 사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그런 종류의 “사랑”은 다만 두려움을 이용하여 통제권을 지키려는 것으로, 일종의 노예생활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사랑이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늘 두려워하는 사랑, 곧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그런 조건부 사랑과 얼마나 다른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가 설명하는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두려움 없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며(로마서 8:15), 우리가 깊이, 진실로,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유(21절)를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자유롭게 말하고, 믿고, 느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됩니다.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어떤 “법칙들”이 있습니까? 사랑받으려고 지켜왔던 그런 법칙들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다르게 살았을까요?
사랑의 하나님,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게 살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까봐 때로 두렵습니다. 나의 마음을 치유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능케 된 기쁨과 자유와 영광을 믿고 누리며 살게 하소서.
Sunday, October 24
Talk, Trust, Feel
Bible In A Year: Jeremiah 3–5; 1 Timothy 4
Today’s Bible Reading: Romans 8: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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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irit you received does not make you slaves, so that you live in fear. [ ROMANS 8:15 ]
Don’t talk, don’t trust, don’t feel was the law we lived by,” says Frederick Buechner in his powerful memoir Telling Secrets, “and woe to the one who broke it.” Buechner is describing his experience of what he calls the “unwritten law of families who for one reason or another have gone out of whack.” In his own family, that “law” meant Buechner was not allowed to talk about or grieve his father’s suicide, leaving him with no one he could trust with his pain.
Can you relate? Many of us in one way or another have learned to live with a warped version of love, one that demands dishonesty or silence about what’s harmed us. That kind of “love” relies on fear for control-and is a kind of slavery.
We can’t afford to forget just how different Jesus’ invitation to love is from the kind of conditional love we often experience- a kind of love we’re always afraid we could lose. As Paul explains, through Christ’s love we can finally understand what it means to not live in fear (ROMANS 8:15) and start to understand the kind of glorious freedom (V. 21) that’s possible when we know we’re deeply, truly, and unconditionally loved. We’re free to talk, to trust, and to feel once more-to learn what it means to live unafraid. MONICA LA ROSE
Are there any unspoken “rules” you’ve learned as conditions for acceptance and love? How might you live differently if you believed you didn’t have to follow those rules to be loved?
Loving God, at times I’m afraid to live honestly with myself and with others-thinking that by doing so I’ll no longer be loved. Heal my heart, and help me believe in and live for the glory, freedom, and joy Your love makes possible.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의 특권 ….
그런데 성장하지 않으면 알지못한다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것인가 ?
영적 성장으로 예수님의 제자, 군사가 될 것인가 ?
나무는 열매로 알듯 성령의 열매로 예수의 제자를 안다
솔직하다는 건 자신의 모든 부분을 털어 놓을수 있어야 하며 ,타인의 죄성에 대해서도 어떤 형식으로던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함묵 불신 냉혹 하면 살기에 편하지만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The Bible verse we read today give us true and authentic hope in our easy self destructive total despair from many odd circumstance we live in. I mean are we free from self destructive despair in this world of uncertainty. Who is in control out of uncontrollable world? By the one who foresee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These Bible verses we read today assure us and give us the comfort to be in complete control.
•적용: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聖経 せいきょう 句節 くとせつ Bible verses) 우리가 살고 있는 예측할수 없이 전체적으로(全体的 ぜんたいてき total) 실망스러운(失望 がっかりする しつぼうする despair) 희한한(希有な目 けうなめにあう odd) 세상 가운데서 참으로(実 じつに true) 진정한(純然 じゅんぜん authentic) 평안을(平安 へいあん peace) 준다. 제말은 이 예측불가한(予測不可 よそくふか uncertainty) 세상에 살면서 자기(自分じぶん self) 파멸적인(破滅的 はめつてき destructive 파괴적인) 절망(絶望 ぜつぼうするdespair) 에서 자유로울수(自由 じゆうな free) 있겠는가? 이 통제할수 없는(統制 とうせいするない uncontrollable) 세상을 누가 통제 하는가? 처음(初 はじめて the beginning) 부터 마지막(終 おわり the end) 까지를 미리 볼수 있으신(よそくする予測 みこす[見越す]예측하다 foresee) 분 아니신가. 오늘 읽은 성경구절이 우리가 완전하신(完全 かんぜんな compete) 통제([統制 とうせい control) 아래 있다는 위로를(慰労 いろう comfort) 준다.
•성경구절은(聖経 せいきょう 句節 くとせつ Bible verses)
•전체적으로(全体的 ぜんたいてき total)
•희한한(希有な目 けうなめにあう odd)
•참으로(実 じつに true)
•진정한(純然 じゅんぜん authentic)
•평안을(平安 へいあん peace)
•예측불가한(予測不可 よそくふか uncertainty)
•자기(自分じぶん self)
•파멸적인(破滅的 はめつてき destructive 파괴적인)
•절망(絶望 ぜつぼうするdespair)
•자유로울수(自由 じゆうな free)
•통제할수 없는(統制 とうせいするない uncontrollable)
•처음(初 はじめて the beginning)
•마지막(終 おわり the end)
•미리 볼수 있으신(よそくする予測 みこす[見越す]예측하다 foresee)
•완전하신(完全 かんぜんな compete)
•통제([統制 とうせい control)
•위로를(慰労 いろう comfort)
다시 큐티 열심히 합니다. 불성실해서 죄송합니다.
주님! 오늘의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금 분명히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에 사탄의 종의 영을 버리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다”(15절)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증거해주시니(16절) 우리는 확실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마치 성령의 휴대폰을 소유하게 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마음껏 소통(대화와 교제)이 가능하도록 특권을 부여받은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아들이 바로 나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는 성령안에서 아버지의 아들로, 영광의 상속자로, 어떠한 고난도 담대하게 물리치며 살아가는 자가 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게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5)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2:12)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갈4:7)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원하고 묵상하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을 것이기에 현재의 고난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믿으려합니다 피조물로만 살아가는 가엾은 인생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ord. You’re love and understanding is authentic and unconditional. Who am I to hide from it or feel that what I express may not be received or welcomed. The Spirit grants us the measure to express our inner self to you and know that you hear all of it. Thank you for being there for me at all times. Amen.
14무릇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4절에서 21절까지,
21그 바라는 것은 이르는 것이니라
아바. 생각의 전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전개를 해낼수 있어야 주신 세상에서 기적을 맛볼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바. 생각해 보면 제 생이 참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옛 습관에 젖은 나를 찾아 발견하고 우울해합니다. 우울한 게 나쁘지만 또 그 게으름은 제게 안정감을 주기도 해요.
안정감. 이게 참 필요해요. 그러나 우울감에서 찾지 않아야 하는데 저는 허무한 데서 출발하여 좋은 것을 찾으려고 애쓴답니다. 그럴려면 아바에 관한 것에서는 찾을수 없으니 아바의 것을 묵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나
제가 가장 허무할때 즉 죽음마저도 아무렇치 않을 때에 주님은 저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을 알아요. 또 내 스스로 다 버려서 정말 혼자일 때도 주님은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저 나처럼 있어주시는 주님의 배려하심에는 자유가 있어요. 가장 좋은 것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게 하세요.
몇일 좀 헤매다보니까 진짜 안정감과 가짜 안정감을 구별하게 되었고 그 먼저는 연약한 나와 같이 계셔주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가짜보다는 진짜를 선택할수 있는 마음의 힘과 용기를 주셨어요. 난 여전히 내가 제일 보기 싫어하는 내모습 이대로 아프지만 난 주님을 선택하고 싶어요. 주님께 속한 제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면 주님처럼 세상에서 사셨던 것과 같은 삶을 살아내고 싶어요.
주님. 제 앞에는 용서라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거든요. 무서웠어요. 제가 거짓으로 용서하는 척 할까봐. 제가 연약해도 이모습이여도 용서할수 있다고 힘을 주세요. 빌립보서4장13절처럼 연약한 나는 할수 없는 그 시작을 주님안에서 발견하고 주님처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이세상에서 받는 영광의 시작은 바로 이렇게 의지하여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한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뻔뻔한게 아니라고 여길수 있으니까요.
서실 좀 힘이 없어요. 그러나 말씀은 이런 제가 아니네요. 그래서 싫기도 했는데요. 허무한 시간이 다소 흐르니까 다시 말씀을 보니까 나와 같이 않으시고 다만 제가 알기에 여전하신 주님을 말씀에서 보니까 즉 허무한 한숨을 스스로 삶으로 아셨고 자신의 시제를 극복할수 있도록 애쓰신 주님께서 바울사도에게 당신의 마음을 부으시려고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에 생각에서 일하심을 봅니다. 저는 볼수 있어요. 주님이 인생에게 얼마나 진심이신지를요. 제가 보는 자연에서의 그 극한 아름다움의 패턴처럼 사람에게서도 특히 광야를 걷는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특히 볼수 있도록 제 눈을 여신 것을 마치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으라 하셔서 장님이였던 나를 알게 하시고 앞을 보게 하셨던 그때의 추억에서도 주님이 왜 작은 앎을 여셨는지를 사람을 통해서도 시작을 하셨는지를 더욷 알게 하시는지를 알고나니까 허무함이 아니라 누릴 것이구나. 또는 내게도 제어를 할수 있는 성령님의 동행하심의 열매가 있겠구나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기회는 내게도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구나. 내가 어떠하든지 주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나를 사셨구나 결코 나를 잃어버리지 못하시는구나 를 더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한계를 주셔서 영생이신 주님을 갈망하게 하시고 그 갈망을 채워주시니 차별없이 그리하시니까 저는 주님을 믿을수 있어요. 제 어떠한 허무적인 논리에도 주님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으시니까요.
아바. 주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의 탄식마저도 아바의 권한에 두셔서 모든 원망을 다 들어주셔서 사탄에게 조금도 빼앗기지 않게 해 주셔서 그래서 허무하더라도 아바의 품에 있을수 있게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바.아직도 난 너무 아파요. 집에 있으면 나을줄 알았는데요. 통증은 이제는 강도도 세지고 아예 손님이 아닌 집사람이 되어 저와 늘 같이 해요. 스트레스성 식탐도 있어 다스려야 하구요. 몸이 무거워져서 마음마저도 힘들구요. 자연속에서 마냥 걸어야 스트레스도 풀리는데 그것도 안되어서 집에서의 하루종일은 집이 집처럼 여기지지 못한 내에게는 한순과 회피성 잠분일때는 허무하고 비참해요.그러나
아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씀없이 조용히 저와 같이 함께 있어 믿어지고 제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 부준에서는 자유함을 주셨어요. 집이 피난처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감사해요. :)♥
그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