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8-11
-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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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은 외아들을 주시는데까지 세상 사람 사랑하니 참 사랑이로다
후렴:하나님은 사랑이라 죄악에 빠졌던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 사랑아닌가
(2)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우리 원수같이 대적하나 사랑하여 주네
(3)세상 죄를 사하시려 우리 죽을 대신 성자 예수 십자가에 고난 받으셨네
(4)이 사랑에 감사하여 곧 주께 나오라 곤한 영혼 주께 맡겨 구원을 얻으라
3월 4일 •목요일
하나님을 아는 것
성경읽기: 민수기 31-33; 마가복음 9:1-29
새찬송가: 294(통416)
오늘의 성경말씀: 요한복음 14:8-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한복음 14:9]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영국의 지휘자 토마스 비첨 경이 하루는 호텔 로비에서 위엄 있어 보이는 한 여인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다가가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대화가 오가면서 그는 그 여인에게 오빠가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단서라도 찾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빠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아, 오빠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왕’이고요.”
비첨 경의 경우처럼, 사람을 잘못 알아보면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예수님의 제자 빌립의 경우처럼 그것이 좀더 심각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자인 그는 당연히 예수님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그들에게]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8-9).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을 너무나 완벽하게 드러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10-11절).
우리가 혹시 하나님의 성품이나 인격, 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등이 궁금하다면,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답을 찾으면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 온유함, 사랑, 그리고 자비가 하나님의 특성을 나타내 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놀랍고 경이로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알지는 못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온전히 보여주신 예수님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인식과 얼마나 일치합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이해하는 가운데 자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Thursday, March 4
Knowing The Father
Bible In A Year: Numbers 31–33; Mark 9:1–29
Today’s Bible Reading: John 1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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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nswered: “Don’t you know me, Philip, even after I have been among you such a long time?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 JOHN 14:9 ]
According to legend, British conductor Sir Thomas Beecham once saw a distinguished-looking woman in a hotel foyer. Believing he knew her but unable to remember her name, he paused to talk with her. As the two chatted, he vaguely recollected that she had a brother. Hoping for a clue, he asked how her brother was doing and whether he was still working at the same job. “Oh, he’s very well,” she said, “And still king.”
A case of mistaken identity can be embarrassing, as it was for Sir Beecham. But at other times it may be more serious, as it was for Jesus’ disciple Philip. The disciple knew Jesus, of course, but he hadn’t fully appreciated who He was. He wanted Jesus to “show [them] the Father,” and Jesus responded,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JOHN 14:8–9). As God’s unique Son, Jesus reveals the Father so perfectly that to know one is to know the
other (VV. 10–11).
If we ever wonder what God is like in His character, personality, or concern for others, we only need to look to Jesus to find out. Jesus’ character, kindness, love, and mercy reveal God’s character. And although our amazing, awesome God is beyond our complete comprehension and understanding, we have a tremendous gift in what He’s revealed of Himself in Jesus. CON CAMPBELL
How well do you know God’s character? How does it match your perception of who Jesus is?
Dear God, help me to grow in my knowledge and appreciation of who You are.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
때때로 믿음에 회의가 생기고 확인하고 싶은 것은
믿음의 성장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행하는 것을 보고 , 열매를 보고 믿으면 된다.
세워주고 격려해주는 것과 파괴하고 갈취하는 것.
내가 알수없는것을 이미 알고계시는분
코로나로 일하고계시는 주님을 보면서
감사 감사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이해하는 가운데 믿음이 자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저희 안에 거하여 예수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으며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소서. 저희의 성장과 성숙이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소서.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은혜충만, 성령충만, 사랑충만을 주셔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펼치게 도와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주소서. 지극히 작은 자를 소중히 여기어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3월 4일 목요일 단상(斷想) 고언
고언(苦言)이란 ‘듣기에는 싫으나 도움이 되는 말’을 의미한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고언을 해줄 수 있는 목사와 스승, 선후배와 친구, 가족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개인주의로 인하여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남의 일에 상관을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특히 직장의 상사나 교회의 목사님에게 고언 또는 직언을 하기가 정말 어렵다. 친구 중에서 나에게 충고나 고언을 해주는 사람의 의미로 rebuker(사실을 말해주며 질책하는 사람)란 영어 단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판단력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여 조언해주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어른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부부관계에서도 잔소리가 아닌 고언 또는 직언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누구도 말해줄 수 없는 것을 진심으로 말해주어 서로 받아들이면 부부관계는 성숙과 발전의 길로 갈 수 있다. 정치 또는 경제 분야의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고언 또는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원로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지도자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편 가르기에 빠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장인이 평화민주당 황색 바람이 호남에 거세게 불던 시기에 무소속으로 군의원에 출마했다. 내가 군의원 출마를 접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고 아내를 통해 어렵게 전달하였으나 장인은 뜻을 굽히지 않고 출마하였다가 낙선의 아픔을 겪었다. 또한 전북노회 회계와 부노회장을 역임한 후에 몇 년이 지나서 노회장에 출마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여 출마를 멈추시라고 직언했다. 고언을 했지만 출마하여 많은 사람의 도움과 협력에도 불구하고 낙선하여 장인과 가족들이 한동안 힘이 들었다. 제일 나이 어린 제가 교회 당회에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 직언 또는 고언을 하여 서로 다투고 분위가가 싸늘하게 되어 힘이 많이 들어 장로를 사임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한 장로님이 나에게 너무 투명하고 정치력이 없어서 그런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신 장로,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적당히 타협을 하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이때에 고언과 직언도 관점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진보사회학자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 그리고 야당에게 고언을 하는 것에 귀 기울여 들으면 좋겠다. 그는 “여(輿) 행태는 민주주의 해치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진단하며 진보와 보수에 얽매이면 증오의 정치가 반복된다고 고언을 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고언과 직언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부터 고언을 받아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때에 고언을 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지면 좋겠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성숙한 삶, 성숙한 문화, 성숙한 사회”를 추구하는 신형환 올림
주님! 제자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을 알지 못하였으며 제자 빌립은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내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 (요14:8)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14:6)
그러나 주님은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리라 ” (요14:7)
”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요17:3)
주님! 예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니 오직 주님만을 더 바라보며 닮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요14: 10)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요5:24)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 큰 줄로 압니다 나의 마음은 선한 것 하나 없으며 연약하기에 보이는대로 믿고자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심을 잊지않고 주님의 사명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 사람을 가장 잘 알수 있는 방법은 같이 생활하는 것
교회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까지 하지만 세번째에서 말문이 막히는게 오늘의 대세 신관인데 거꾸로 추리하면 맞지 않음
매일 죄가 벗겨지고 강건해지고 마귀가 눈빛만 보고도 떠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은가
Lord. Thank you for showing yourself through your Son. You revealed yourself to me when I was at the lowest point of my life. You poured out for love and mercy for me when I thought there was a point of no return. Every morning I wake up and get to appreciate the wonders and good works that Christ showed us. I will continue to live my life looking at you first. Amen!
아멘! 할렐루야
John 1:1 says clearly that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John 1:1 NIV
The word is God, means God exist in revealed logos in the Old Testament.
Now in New Testament God came to the world in humanity so He dwelled among us as Jesus.
In other word Jesus is God, Man to show us God’s personification, so in response to Phillip’s deman, he said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The Bible state the Trinity in clarity not in ambiguity.
•적용: “태초에(太初 たいしょin the beginning)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KRV 하나님은 말씀으로(言葉 ことば the logos) 계시로(啓示 けいじ revealed) 존재(存在 そんざい exist) 하시다가 예수님으로 직접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당신을 보여주셨다. 다른말로 하면 구약 에서는 곧 말씀이 하나님 이시며 이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人間の形相 にんげんのけいじょう in humanity) 오신 하나님 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가운데 사신것 이다.
다른 말로하면 예수님 께서는 하나님의 인격을 입고(人格 じんかく 着 つ-ける ㅛin personification) 인간들 가운데 사시며 직접 우리에게 대답 하시기를 – “ 나를 본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본것이다” – 라고 하시며 성경이 말씀해 주는 삼위일체를(三位一体 さんみいったいthe Trinity) 모호하지(模糊 もこ ambiguity) 않게 분명히(分明 ぶんめいに clarity)말씀 하신다.
태초에(太初 たいしょin the beginning)
말씀으로(言葉 ことば the logos)
계시로(啓示 けいじ revealed) 존재(存在 そんざい exist)
인간의 형상으로(人間の形相 にんげんのけいじょう in humanity)
인격을 입고(人格 じんかく 着 つ-ける ㅛin personification)
삼위일체를(三位一体 さんみいったい the Trinity)
모호하지(模糊 もこ ambiguity)
분명히(分明 ぶんめいに cla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