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7-18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567장. 다정하신 목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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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정하신 목자예수 어린 양을 돌보사 캄캄한 밤 지낼 동안 나를 품어 주소서
(2)선한 목자 내 주에수 나의기도 들으사 내일아침 될때까지 나를 지켜 주소서
(3)좋은 옷을 입히시고 맛난음식 먹이사 고이길러 주시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4)주여 나의 지난 허물 용서하여 주시고 친구들도 저와같이 복을 받게 하소서 아멘
11월 19일 •목요일
용감한 행동
성경읽기: 에스겔 11-13; 야고보서 1
새찬송가: 567(통436)
오늘의 성경말씀: 요한복음 10:7-18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4-15]
존 하퍼는 여섯 살 된 딸과 함께 타이타닉 호에 탔을 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고 있었다면 그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도 주님을 알았으면 하는 열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빙산에 부딪히자 바로 물이 안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홀아비였던 하퍼는 어린 딸을 구명정에 태우고 나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수라장이 된 배 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는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며 계속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명정에 태우세요.” 하퍼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당신과 내가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이천 년 전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인류의 죄로 인한 죽음의 형벌을 대신 갚겠다고 결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 일생의 사명이었습니다. 주님은 유대 지도자들과 말씀하실 때 “나는 목숨을 버린다”(요한복음 10:11, 15, 17, 18)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실제로 끔찍한 죽음을 당하심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존 하퍼, 그리고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10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오늘 나의 행동을 통해 어떻게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의 행위에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 수 있도록 주님의 생명을 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Thursday, November 19
Valiant Actions
The Bible in One Year Ezekiel 11–13; James 1
Today’s Bible Reading John 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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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 . . 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John 10:14–15
John Harper had no idea what was about to unfold as he and his six-year-old daughter embarked on the Titanic. But one thing he knew: he loved Jesus and he was passionate that others know Him too. As soon as the ship hit an iceberg and water started pouring in, Harper, a widower, put his little girl on a lifeboat and headed into the chaos to save as many people as possible. As he distributed life jackets he reportedly shouted, “Let the women, children, and the unsaved into the lifeboats.” Until his last breath, Harper shared about Jesus with anyone who was around him. John willingly gave his life away so others could live.
There was One who laid down His life freely two thousand years ago so you and I can live not only in this life but for all eternity. Jesus didn’t just wake up one day and decide He would pay the penalty of death for humanity’s sin. This was His life’s mission. At one point when He was talking with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He repeatedly acknowledged “I lay down my life” (John 10:11, 15, 17, 18). He didn’t just say these words but lived them by actually dying a horrific death on the cross. He came so that the Pharisees, John Harper, and we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v. 10).—Estera Pirosca Escobar
How do I reveal that I truly love those around me? How can I show Jesus’ love to someone through my actions today?
Jesus, there aren’t words grand enough to thank You for demonstrating the greatest act of love there is. Thank You for giving Your life away so I might live. Help me to show Your love to others no matter how much it costs
제가 두려워서 피함도 아님니다. 흔한 가끔 나들이 같은 것인데 마치 눈이 어두운 사람처럼 저는 어리둥절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10.5485.9702
양을 생명을 걸고 지키는 목자와
이익을 얻기위해 돈을 받고 일하는 삯꾼
지도자도 마찬가지로 평시에는 모르지만
위기시에 그 진가가 드러난다.
국민을 위하는 자와 자기구룹의 이익을 …
어리석은 백성은 시간이 지나야 안다.
예수님,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의 행위에 감사하며 오늘을 시작하게 하소서. 저희 죄와 허물을 사해주시기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작은 부분부터 경건한 삶으로 나타나게 성령님께서 인도해주옵소서. 확산되는 코로나애 대한 두려움과 절망감에서 벗어나 주님만 바라보고 소망을 얻게 하소서.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며 하늘의 비밀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선하신 목자 나의 아버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를 인도하여주시고 저의 문이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차고 넘치게 받아 저에게도 그것들이 흘러 넘쳐서 다른이들에게도 전하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이미 성경과 성서를 통해 교훈하셨듯이
예수님의 자신의 세계가 속하지 않는 땅에서는
그저 침묵기도함으로서 담담하게 누가 머라하든 감히 십자가를 질수 있는 열정을 드러내
외롭거나 고독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공동체에서 버림받은 무시무시한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통과하시는 지혜를 이미 보이셨고
우리로 하여금 충격적으로 바라보게 하셨기에 십자가를 생각하는 삶을 살수 있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사실은 마치 온 몸의 지체가 헤더가 되는 경험이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그의 길을 통과하여 예수님의 사람임을 증명하겠지요.
좁은 길을 걷고 십자가를 지고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입성하겠다하여 천로역정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선명하게 경험하겠지요.
인류역사에 기록된 독특했던 이스라엘인 예수님 한사람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삶에서 십자가 사건 전과 후로 나뉘어진 삶을 사는 이, 예컨대 타인의 생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어왔고 그들에게서 우리는 어떠한 지혜를 깨닫고 배워 그보다 더한 지혜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뇌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제는 만나게 하옵소서.
사실 그들이 존재한다면 존경의 의미로써 이들에게 무릎을 꿇고서 배우게 하소서.
왜냐하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몸을 불이기 위해 또는 더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뇌적 방법을 통해
지체적 헤더들이 겪는 부작용이 있는데 그 점에 대한 대안방법론을 찾아 적용해 봐야 합니다.
저항이란 신의 단어가 아니며 우리와 같은 사람이 속한 피조물의 단어입니다.
저항이란 단어를 통해 배울수 있는 육체적 논리가 있습니다. 이런 단어의 대표단이 되는 이 앞에 무릎틀 꿇고 배운 후 반드시 부작용이 무엇이니 논리적 사고로서 이 점에 대해 명확한 대안적 논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부모의 해산의 고통 뒤에 아들딸을 얻는 기쁨의 상이 있고 자녀들의 기쁨또한 있겠습니다. 사실 후에 기쁠수 있다면 전에 인내할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생명이 생명을 낳는 행위가 선고통 후기쁨이니까요.예컨대 켄가이어가 원서로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중 한 작품을 사진 작가를 통해 그가 글로써 소개할 때 원서에 적혀 있는 데로 과정을 따라가 보면 마치 아들이 엄마를 낳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시간 순서상 엄마가 아들을 낳는 것이 먼저이겠으나 십자가 사건의 관점에서 더욱 선명히 아들은 엄마를 낳습니다.
자기가 나온 곳에서 나와 다시 자기가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는 인간을 위한 표현이 적절할수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범죄하기 쉬운 현실에서 삽니다.”
“그 대안으로서 예를 들어”
예수님의 가나 혼인 포도주 공동체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까지 그 클라이막스인 피에타 사건이 있으면 우리가 겪는 골치아픈 어떠한 사회적 범죄는 어떻게 해결될까요? 중략
사람의 표현으로 쉽게 설명하면 누구든지 살다가 충격적인 비주얼을 볼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굳이 피하지 않고 바라볼 힘 겸손을 얻어 바라본다면 내적 변화는 일어날 것입니다.
누구나 혼자만 몰래 본다면 교만으로 증명되는 데 무리가 있어 설명할수 있을 때
어쩔수 없는 윤리적 관점이.이미 존재함으로 오해만 무성하겠으나 용기내어 나오신 예님들이 계셔준다면 이론은 증명됩니다.
이처럼 매체를 통해 과학교육이 이루어짐을 더 선명에 하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한 공학자로부터 시작된 헌신과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사실 악함에 대해 더 자세히 설계해야합니다. 사실 세계는 그리해왔구요.
그러나 더 나아가 더 제대로 악함에 대해 표현하여 설계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악함으로부터 어쩌면 온전히 벗어나 선함으로 이길 힘을 더 얻을수 있다고 느낍니다.
보고 들을 때 반드시 구별되어 드러난 선과악이 어떤 구조로 어떤 구성으로 되어
때때론 빛으로 때온 어두음으로 신체와 그림자를 드러내는지
우주를 설계하신 창조주에 설계한 데로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가 열매가 있는 설계자는 존중받아야 자랑하고 그 결과가 문화가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과연 지킬 것은 무엇이고 과연 버릴 것은 무엇인지 선명히 깨달아야
미래 세계는 덜어낸 문제점만 가지고 더 열릴 것입니다.
학자들의 침묵이 이해되어야 위화감이 줄지어. 저항과 파괴와 분노같은 위험요소는 점점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켄가이어같은 통찰가들을 각종 나라 각종 세계의 번역서로서가 아니라 원서로 미리 만나 미리 시뮬레이션하시고 예컨대 미켈란젤로의 피에나를 직접 보러 가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의 사고를 나눠 주십시오. 그리고 또 다시 10년 전과 같이 번역서 인생들을 하는데 주신다면 만나보세요. 홍원서형.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로서 바라볼수 있게 되면 시작되면 그리움은 잠시 두고서 그 유닛된 문같은 점을 찾아야 해요. 중략
오늘의 기도🙏🏻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나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작은 희생과 헌신의 마음들이 모아져서 그 사랑을 만들어가게 하옵소서. 아멘.
Good Shepherd Jesus who came to die for His flocks us, this part of John’s gospel we just read, perfectly has been conveyed us since the Old Testament days by like Ezekiel, Isaiah, and David. The relationship between sheep and shepherds are reciprocal, they know each other. But how we can say this relationship; do we know each other as sheep and shepherd?
•적용: 선한 목자(善良だ, よい.牧者 ぼくしゃ Good Shepherd) 그분의 양떼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러 오신분, 요한 복음서의(福音書 ふくいんしょ gospel) 오늘 읽은 부분에서(部分 ぶぶん part), 또 구약시대의 에스겔, 이사야, 다윗에 의하여 우리에게 완벽하게(完璧だ かんぺきだ perfectly) 전달되어 왔다(伝達 でんたつ have been conveyed). 양과 목자의 관계는(関係 かんけい relationship) 상호적 이다(相互的 sōgoteki reciprocal), 그들은 서로를 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우리의 목자와 서로 안다고 말할수 있는 관계(reationship) 가운데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