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12-17
-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43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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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2)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3)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4)나 십자가 대할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5)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10월 21일 •수요일
이 세상은 무엇이 문제일까?
성경읽기: 이사야 62-64; 디모데전서 1
새찬송가: 143(통141)
오늘의 성경말씀: 디모데전서 1:12-17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15]
‘이 세상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20세기에 접어들며 런던타임즈가 독자들에게 던졌던 잘 알려진 질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이지요.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저에게 그걸 다 설명할 시간을 주실 건가요?” 라고 바로 답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기에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하튼 타임즈는 그 질문에 대해 수많은 응답을 받았는데 그중 눈에 딱 들어오는 답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국 작가이자 시인, 철학자였던 G.K. 체스터튼은 남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세 단어의 짧은 답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문제입니다.”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의 답은 분명히 맞습니다. 체스터튼보다 훨씬 전에 바울이라는 사도가 있었습니다. 일평생 모범 시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바울은 자신의 결점들을 말하며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13절)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언급하며 그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5절)라고 체스터튼과 비슷하게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과거나 지금이나 이 세상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나아가 그는 그 문제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우리 주의 은혜”(14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진실인가요! 이 영원한 진실로 우리는 눈을 들어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의 빛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당신은 바울과 체스터튼이 한 것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죄인인 저를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인내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영원히 돌려드립니다.
Wednesday, October 21
What’s Wrong with the World?
The Bible in One Year Isaiah 62–64; 1 Timothy 1
Today’s Bible Reading 1 Timothy 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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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of whom I am the worst. 1 Timothy 1:15
There is an oft-heard story that The London Times posed a question to readers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What’s wrong with the world?
That’s quite the question, isn’t it? Someone might quickly respond, “Well, how much time do you have for me to tell you?” And that would be fair, as there seems to be so much that’s wrong with our world. As the story goes, The Times received a number of responses, but one in particular has endured in its brief brilliance. The English writer, poet, and philosopher G. K. Chesterton penned this four-word response, a refreshing surprise to the usual passing-of-the-buck: “Dear Sirs, I am.”
Whether the story is factual or not is up for debate. But that response? It’s nothing but true. Long before Chesterton came along, there was an apostle named Paul. Far from a lifelong model citizen, Paul confessed his past shortcomings: “I was once a blasphemer and a persecutor and a violent man” (v.13). After naming who Jesus came to save (“sinners”), he goes on to make a very Chesterton-like qualification: “of whom I am the worst” (v.15). Paul knew exactly what was and is wrong with the world. And he further knew the only hope of making things right—“the grace of our Lord” (v.14). What an amazing reality! This enduring truth lifts our eyes to the light of Christ’s saving love.—John Blase
What wrong with the world? Can you own the answer Paul and Chesterton gave? What is one way you can accept that without sliding into self-hatred?
God, thank You for Your immense patience with me, a sinner. To You be honor and glory forever and ever.
죄인중에 괴수 … 그 보다도 더 못된 나 ….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없는 은혜
그 은혜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주변사람과 지구 반대편 사람이라도 섬기며
남은 여생을 살겠다는 헌신의 시니어선교.
하나님, 제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던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의 보혈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으로 믿음과 사랑안에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영생얻는 자로 살도록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만세의 왕,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 죄인인 저를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인내에 감사드립니다. 죄와 허물 많은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영원히 돌려드립니다. 대부분 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깨닫게 하시어 자신의 분수를 돌아보며 겸손하게 살아가게 인도해주옵소서. 사죄의 은총을 마음 깊이 새기고 참된 제자로서 살아가게 하소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고 모든 영광과 존귀, 감사와 찬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디모데전서 1:12 -17처럼 아니더라도 오늘의 흐름의 시작을 다시금 바울사도님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려드려 성경적 세계관을 베풀어 주신 우리 사람과 로봇까지 우리 모두의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높으신 사고하심으로 명령하신 것이 이루어져 결국 우리의 모든 신음이 응답하시는 유일하신 신으로서(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영광을 우리의 연약한 삶에서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에게 당신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 육체가 아니라 영혼의 즐거움을 알아 더이상 어리석은 슬픔에 조정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나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면 정말 부끄럽고 두려웠을텐데 그 모든 것을 가려주시고 참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아멘.
Even Ananias the then most devout Christian protested to God’s decision saying Paul would not be worthy to be saved, but today’s text disclosed GOD amazing thought to use even the worst persecutor once as Paul as His instrument of gospel. With this said, how could I judge God’s will in my poor I disqualified judgement? But I find myself I often do. Alas, should be shameful!
•적용: 그 당시 가장 경건한(敬虔 けいけん devout) 크리스찬 이었던 아나니아 조차도 바울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資格 しかく least qualified) 하나님의 그러하신 결정에(決定 けってい dicision) 항의한다(抗議 こうぎ protested),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本文 ほんぶん text) 바울 같이 악한 박해자(迫害者 persecutor) 조차도 당신의 복음의 도구로(福音 ふくいん 道具 どうぐ instrument of gospel) 사용 하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생각을 읽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하나님의 뜻을 내 형편 없는(形便 形勢 けいせい 成なり行ゆき, 仕儀しぎ poor) 무자격한 (形便 形勢 けいせい 成なり行ゆき, 仕儀しぎ poor) 얼마나 자주 판단하고 있나? 아이구, 마땅히 부끄러워 할 일이다!
이 세상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당신은 바울과 체스터튼이 한 것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그것의 “보이는 그대로”vs “그 너머의 형상에 대한 원인 그대로” vs사람 그리고 로봇이 아니신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있긴 합니까?? 신체의 신경의 고통이 되는데 말입니다. 이런 류의 질문은 신에게 던지는 돌맹이와 같습니다. 불평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심에 감탄하며 감사하니까 신기한 하나님께 집중할 에너지를 얻습니다. 신의 계획과 왜 그러하시는지 가르쳐 주시면 침묵이란 언어로써 기도하며 동참할 것입니다. 사람과 로봇에게 들으라고 나누는 것이 아니며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서 그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아버지되신 하나님. 당신을 경외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