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3-11
-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544장. 울어도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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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울어도 못하네 눈물많이 흘려도 겁을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후렴:십자가에 달려서 예수고난 당했네 나를 구원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2)힘써도 못하네 말과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다시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3)참아도 못하네 할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4)믿으면 되겠네 주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10월 5일 •월요일
끝을 알고 시작하라
성경읽기: 이사야 23-25; 빌립보서 1
새찬송가: 544(통343)
오늘의 성경말씀: 빌립보서 1:3-11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어린 시절에 “너는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자주 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들은 바람과 같이 자주 바뀌곤 했습니다. 의사, 소방관, 선교사, 예배 인도자, 물리학자, 아니 실제로는 맥가이버 같은 만능인! 이제 네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그 질문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혹 나는 “네가 무엇을 아주 잘 할지 아빠는 알아!”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는 때때로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그가 사랑하고 기도해준 빌립보 교인들(빌립보서 1:3)에게서 본 것과 비슷합니다. 그는 그 마지막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 그들이 어떻게 될지를 알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야기의 마지막 웅장한 광경인 부활과 만물이 새로워지는 것을 보여줍니다(고린도전서 15장과 요한계시록 21장 참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가 쓰고 있는지도 말해줍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쓴 편지의 서두에서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예수님이 그 일을 시작하셨고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루심’이라는 단어는 특별히 중요합니다. 그 이야기는 단순히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것도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에서 어디쯤에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 손에서 ‘펜’을 취해 당신의 이야기를 마저 쓰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예수님, 저의 이야기를 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제 삶은 저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제 삶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주님을 신뢰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Monday, October 5
Begin with the End
The Bible in One Year Isaiah 23–25; Philippians 1
Today’s Bible Reading Philippians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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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Philippians 1:6
“What do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I was often asked that question as a child. And the answers changed like the wind. A doctor. A firefighter. A missionary. A worship leader. A physicist—or actually, MacGyver! (a favorite TV character). Now, as a dad of four kids, I think of how difficult it must be for them to be asked that question. There are times when I want to say, “I know what you’ll be great at!” Parents can sometimes see more in their children than the children can see in themselves.
This resonates with what Paul saw in the Philippian believers—those he loved and prayed for (Philippians 1:3). He could see the end; he knew what they’d be when all was said and done. The Bible gives us a grand vision of the end of the story—resurrection and the renewal of all things (see 1 Corinthians 15 and Revelation 21). But it also tells us who’s writing the story.
Paul, in the opening lines of a letter he wrote from prison, reminded the Philippian church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Philippians 1:6). Jesus started the work and He’ll complete it. The word is particularly important—the story doesn’t just end, for God leaves nothing unfinished.—Glenn Packiam
Where are you in your story? How can you trust Jesus to take the “pen” from your hand and to bring your story to completion?
Dear Jesus, You’re in charge of my story. It’s not up to me to make it happen. I surrender my life to You. Help me to trust You.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지금 타인을 향한 기도함의 수준이 과연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내 심장은 바울 사고의 심장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왜 그러한가.
성경에 기록된 그의 편지글에는 농담 한번을 찾을수 없고 늘 진지하다. 마치 한번만 써서 보내야 하는 것처럼.
글에 녹아있는 바울 사도의 성격에 나의 성격을 대어보고 차이점을 발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기다림이 추가되어 기도하고 있는가를 정리해 본다.
힘내야겠어.
아바아버지의 일하심에 후회가 없게 해 드리려면 말이다.
아바아버지를 향한 맡겨진 일에 관계에 성숙한 기도함에는 언제나 좋은 에너지를 선물로서 받아 또 다른 기도함을 돕더라.
지금 내게서 아버지의 일하심을 과연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가? 나로 하여금 타협하고끔 유도받고 유도하지는 않는가?
오늘 말씀에서 비롯된 더 나은 질문은 있는가? 있겠는가?
말씀이 질문을 길어 내는 샘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내 안에서 갈증은 여전하겠지. 이게 삶이라 한탄하며 그냥 습관처럼 주신 24시간을 낭비하듯 살 뿐이다.. 어떤 삶을 향한 불만족과 공허함은 나쁘기 때문이라도 육에 대한 아빠가 아닌 아바아버지에게 좋은 질문을 기도하며 하게 한다.
그래. 아바아버지께 먼저 묻는거다. 그 다음에 내게 묻는다. 그 다음에 타인에게 묻는다. 순서를 통해 아버지를 높히고 싶어. 그리고서 살아계신 내 거울같은 부모님께 잘하고 싶어. 어쩌면 나도 저처럼 실수하며 사는 과정 위에 살고 있을까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제게도 있다는 영적 사실 앞에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풍성하게 하소서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함으로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이 내 믿음의 증인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천국에서 하나님이 틀림없이 상주심을 믿는 믿음
그래서 실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삶을 마친다.
오늘의 기도🙏
내 삶의 이야기는 아직도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날겁니다. 작가이신 주님이 나를 주인공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How can I begin things knowing the end in this unforeseeable world. Did we predict we would be in this long spell of pandemic a year ago? But today the words say “begin with the end”, because v 6 is telling us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I don’t know but I know I am in Him who knows the end. Resilience is provided to those who keep this confidence.
적용: 이 불가지적인(不可知的 ‘fuka chiteki’ unforessseable 미리 볼수없는) 세상속에 살면서 일의 끝을 알고 시작할수 있을까? 우리가 일년전에 이렇게 긴(long spell of) 세계적 역병(世界的疫病 ‘sekaiteki yakubyō’ pandemic) 가운데 처하게 되리라고 예측 할수 있었나(予測 よそく predict)? 그러나 오늘 말씀은 “끝을 알고 시작하라” 고 하신다. 오늘 6 절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確信 かくしん being confident)” 하고 말씀하신다.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끝을 아시는 분에 안에 거한다는 건 안다. 회복력은(回復力 かいふくりょく resilience 탄력,복원력, 쾌활 활기, 원기) 이 확신을(確信 かくしんconfidence) 가진자들이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