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11-13; 17-24 525장. 돌아와 돌아와 _ (1)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후렴: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오라 (2)돌아와 돌아와 해가질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우리아버지께 (3)돌아와 돌아와 한난있는곳과 죄가있는 곳과 미혹 받는데서 (4)돌아와 돌아와 집에 돌아오라 모든것 풍성한 아버지 집으로 11월 22일 • 금요일 성경읽기: 겔 18-19; 약 4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15:11-13; 17-24 작가 헨리 나우웬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박물관에 가서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을 오랫동안 감상했던 때를 돌이켜 봅니다. 날이 저물며 근처 창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바뀌면서 나우웬은 빛이 바뀌는 것만큼 여러 다른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달리 보이는 그림 하나하나는 망가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서로 다르게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나우웬은 네 시 쯤 되니까 그림 속의 세 인물이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탕자인 동생이 집에 돌아오자 극진히 환대한 아버지에게 분개한 큰 아들이었습니다. 어쨌든 동생은 상당히 많은 집안 재산을 낭비함으로써 가족을 내내 고통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지 않았던 가요?(누가복음 15:28-30). 다른 두 인물을 보며 나우웬은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로 다가왔던 죄인들에 대해서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1-2절). 나우웬은 그림 속의 모든 인물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낭비하는 삶을 살았던 작은 아들, 비난하는 형,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어떤 사람도 다 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렘브란트의 그림 어느 부분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다시 돌아볼 수 있을까요? 빛이 바뀌어갈 때, 우리는 그림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도와주소서.
Friday, November 22 The Bible in One Year Ezekiel 18–19; James 4 – [They]muttered, “This man welcomes sinners and eats with them.” Luke 15:2 Author Henri Nouwen recalls his visit to a museum in St. Petersburg, Russia, where he spent hours reflecting on Rembrandt’s portrayal of the prodigal son. As the day wore on, changes in the natural lighting from a nearby window left Nouwen with the impression that he was seeing as many different paintings as there were changes of light. Each seemed to reveal something else about a father’s love for his broken son. Nouwen describes how, at about four o’clock, three figures in the painting appeared to “step forward.” One was the older son who resented his father’s willingness to roll out the red carpet for the homecoming of his younger brother, the prodigal. After all, hadn’t he squandered so much of the family fortune, causing them pain and embarrassment in the process? (Luke 15:28–30). The other two figures reminded Nouwen of the religious leaders who were present as Jesus told His parable. They were the ones who muttered in the background about the sinners Jesus was attracting (vv. 1–2). Nouwen saw himself in all of them—in the wasted life of his youngest son, in the condemning older brother and religious leaders, and in a Father’s heart that’s big enough for anyone and everyone. What about us? Can we see ourselves anywhere in Rembrandt’s painting? In some way, every story Jesus told is about us. —Mart DeHaan How might we reflect again on the story Jesus told and on the Rembrandt painting? As the light changes, where do you find yourself? Father, help me to see myself for how much You love me.
탕자의 형
새찬송가: 525(통 315)
[그들이] 수군거려 이 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15:2The Older Brother
Today’s Bible Reading Luke 15:11–13; 17–24
자연스러게 자신의 심덕을 펼치고 다른 스승들의 은혜와 대비하면서 과연 오늘 이루어야 할 뜻은 무엇일까 수시로 기도
기독교인이 자세이 검사해야 할 기장 큰 일은 자신의 뿌리깊은 습관과 고정관념이라죠
낭비하는 아들의 둘째, 비난하는 큰아들, 이러쿵 저러쿵 수군거리는 종교지도자들…
나는 낭비하는 둘째의 유형이었죠
아뇨 오히려 위세당당한 자처럼 비난하는 큰아들이 되어 잘난체하고 있었고 세상이 끄는데로 세상에 편승하여 수군대는 반렬에 올라타있는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위선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아버지께로 달려갔을 때!
제일 좋은 옷, 손에 가락찌, 발에 좋은 신발 신기우고 송아지 잡아 잔치를 벌이신 내 아버지!
세상이 아니요,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쓰시기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에
회개하며 돌아선 길이었음을 깨닫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제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 아니요, 오직 당당히 죄에 맞서고, 세상에 맞서고, 마귀를 대적하고
이기는 자가 되라!
오직 주의 군사되어!
하늘이 입혀준 권세 힘입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를 대하는 아버지의 기쁨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보고 기뻐한 이유는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 여겼고 또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다시 살아나게 되는 사건은 하나님께는 잃었던 그 자녀를 다시 얻는 기쁨이 된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또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 탕자가 돌아온 후 아버지와 함께 누릴 풍성한 삶을 상상해 보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리고 또 앞으로 누릴 풍성한 삶이 기대된다.
또 우리의 이웃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와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고 그 나라에 들어가도록 기도로 도와야 하겠다.
나 자신도.큰아들이었다
참으로부끄러운자신이군요
그러면서.수근거리고
하나니께서.웃으심이여
다시금기도하며.용서을구함니다.감사합니다
회게할수가있으니.
감사합니다 아멘
2019-11-22
•Comments: ln criticizing I am the brother and in hypocrisy a Pharisee and teacher. Do I see any good characters in me as forgiving, enduring nature? But I am to pursue the goodness in me in daily QT. Author ends his article: ”In some way, every story Jesus told is about us.”
•적용: 비난하는 내속엔 그 형이, 위선적인 부분에선 바리새인과 교사의 모습이 내안에 있다. 내안에 선한것 이 있나? 용서하고 오래 참음 말이다. 매일 묵상을 통해 선함을 추구할 밖에. 오늘 저자는 그의 기고문을 이렇게 마감한다: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탕자깉은 나에게
몽골에서 인터넷이 접속이 안되어
탕자의 모습을 감춰주셨다 ….
남은 인생
탕자도, 바리새인도, 형도 아니고
아버지의 마음을 닮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