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3:19-26
-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1)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있는 긍휼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 하리라
(2)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일 당한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3)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예수 인도 하셨네 아멘
12월 31일 • 주일
성경통독: 말 1-4, 계 22
새찬송가: 384 (통 434)
믿음을 세우는 기억들
오늘의 성구 예레미야애가 3:19-26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애가 3:23
음악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서 송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지난해의 기도 제목들을 회상하니 기쁨과 소망이 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모 말을 안 듣는 아이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직장을 잃은 사람들과, 깨어진 관계들을 가지고 다 함께 슬퍼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회심을 한 사람들과 치유된 관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승리와 결혼과 졸업과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세례의 순간들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또한 새로 태어나거나 입양된 아기들, 그리고 주님께 헌신하는 아이들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을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의 “고초”와 “담즙”을 회상했듯이(애 3:19), 우리 교회 성도들이 겪은 시련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않는다”(22절)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지난날의 하나님의 신실하셨음을 다시 확신했듯이,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25절)라는 그의 고백이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삶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여주는 증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서로 의지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을 찾고 서로를 도와주면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과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믿음이 더 강해져서 더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주님, 우리의 과거를 사용하여 우리의 소망이 주님의 영원한 신실하심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새해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셨고 또 언제나 신실하실 것을 기억하자.
December 31 • Sunday
Faith-Building Memories
The Bible in One Year Malachi 1–4; Revelation 22
Today’s Reading Lamentations 3:19–26
Great is your faithfulness. Lamentations 3:23
As I stepped into the music-filled sanctuary, I looked around at the crowd that had gathered for a New Year’s Eve party. Joy lifted my heart with hope, as I recalled the prayers of the previous year. Our congregation had collectively grieved over wayward children, deaths of loved ones, job losses, and broken relationships. But we’d also experienced God’s grace as we recalled changed hearts and healed personal connections. We’d celebrated victories, weddings, graduations, and baptisms into God’s family. We’d welcomed children born, adopted, or dedicated to the Lord, and more—so much more.
Reflecting over the history of trials our church family faced, much like Jeremiah remembered his “affliction” and his “wandering”(Lam. 3:19), I believed that “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 for his compassions never fail”(v. 22). As the prophet reassured himself of God’s past faithfulness, his words comforted me: “The Lord is good to those whose hope is in him, to the one who seeks him”(v. 25).
That night, each person in our congregation represented a tangible expression of God’s life-transforming love. Whatever we’d face in the years to come, as members of the interdependent body of Christ, we could rely on the Lord. And as we continue to seek Him and support one another, we can, as did Jeremiah, find our hope being ratified by faith-building memories of God’s unchanging character and dependability. Xochitl Dixon
- Lord, thank You for using our past to assure us our hope remains secure in Your everlasting faithfulness.
As we look ahead to the new year, let’s remember that God has always been and always will be faithful.
저는 “오늘의 양식”을 수년 째 구독하는 애득자입니다.
내용의 말씀으로 많은 은혜를 받곤 합니다만 이번 12월호 31일자에 “wedding”을 “결혼”으로 번역된 것에 건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남녀가 만나서 부부가 되는 것을 “婚姻”이며, “결혼”은 일본식 용어로 일제치하에 들어온 것으로, 성경에도 “혼인”이었는데 개혁성경에는 “혼인과 결혼”을 혼용하고 있는데 이는 “婚姻”으로시정되어야 합니다.
부부임을 정부기관에 신고할 때 “혼인신고”를 하지 “결혼신고”를 하는게 이닙니다. 우리 법률 용어에 혼인은있으나 결혼은 없습니다. 즉 “혼인빙자 간음죄”는 있어도 “결혼빙자 간음죄”는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