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바쳤다오
작성자
odbkorea
작성일
2016-06-15 12:48
조회
2226
가을 색이 짙어가던 지난 10월 말, 저희 ‘오늘의 양식’ 상담부 봉사자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로 봉사하는 날이 달라서 같이 얼굴을 볼 기회가 적은 저희들로선 참 반가운 자리였지요. ‘오늘의 양식’을 섬기는 부서가 여럿 있지만 상담부는 독자들의 전화를 받고 독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창구역할을 하는 부서입니다.
스무 명이 넘는 봉사자가 모인 그 자리에는 10년 이상 한결 같은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가끔, 적지 않은 봉사자들이 어떻게 이 자리를 10년 가까이, 혹은 훨씬 넘게 지키고 있는 지 그 이유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새 10년이 되었네요. 나는 오늘의 양식에 내 청춘을 바쳤다니까요.”
“우리 오늘의 양식사에서 봉사하는 것이 너무 좋지 않나요?”
‘오늘의 양식’ 상담부는 좀처럼 스스로 은퇴하거나 퇴출 되는 일이 없는, 요즘 회자되는 말처럼 ‘신이 내린 직장’과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곳은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역지’입니다.
“저는 청송에 있는 수감자입니다. 이 어두운 생활 중에 ‘오늘의 양식’은 저에게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양식’으로 편지를 제일 많이 보내는 분들이 바로 수감자들입니다. 종종 외국인 수감자들의 편지도 받습니다. 오늘의 양식에 영문이 병기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인데요, 제 아들이 군에서도 ‘오늘의 양식’으로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하네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때로는 군에서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는 멋진 청년도 있답니다.
“시각장애우입니다. ‘오늘의 양식’ 점자본이 있다는데 받아볼 수 있을까요?” 가장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순간이지요.
10만여 ‘오늘의 양식’ 독자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봉사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혹은 벅차게 만든답니다. 세상에서도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저희는 10만여 독자들과 영적인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셈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봉사자들이 오늘의 양식사에 10년씩 머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9) 지난 10월 초 ‘오늘의 양식’ 말씀입니다. 필자는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부요하고 충만한 삶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오늘의 양식사에서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감히 경험할 수 있다면 10년을 더 섬긴들 무슨 문제가 될까요. 오히려 축복이지요.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역지’ 오늘의 양식사를 떠나기 힘든 이유를 하나 더 찾았습니다.
또 다른 필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재능이 교회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이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같이 일을 할 때 우리의 몸은 계속 강해집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봉사자들은 한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만나도 서로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 ‘오늘의 양식’에 속해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자부심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천국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될 때 공동체와 개인이 고루 성장한다는 말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답니다. 봉사는 나를 다듬고 성숙하게 만드는 기회라고 하지요. 미약하지만 우리의 시간과 수고가 ‘오늘의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쓰일 때 우리가 먼저 성장하고 충실해지는 것을 경험한답니다.
이만 하면 진정 10년씩 청춘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닌가요? 어쩌면 앞으로 10년, 20년, 우리의 중년과 노년을 ‘오늘의 양식’에 더 바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 이미 그런 분들이 계시네요.
저희 ‘오늘의 양식’ 봉사자들이 주님의 귀한 사역 한 자락을 붙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남선희(집사, 할렐루야교회, 오늘의 양식 상담부 봉사자)
스무 명이 넘는 봉사자가 모인 그 자리에는 10년 이상 한결 같은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가끔, 적지 않은 봉사자들이 어떻게 이 자리를 10년 가까이, 혹은 훨씬 넘게 지키고 있는 지 그 이유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새 10년이 되었네요. 나는 오늘의 양식에 내 청춘을 바쳤다니까요.”
“우리 오늘의 양식사에서 봉사하는 것이 너무 좋지 않나요?”
‘오늘의 양식’ 상담부는 좀처럼 스스로 은퇴하거나 퇴출 되는 일이 없는, 요즘 회자되는 말처럼 ‘신이 내린 직장’과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곳은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역지’입니다.
“저는 청송에 있는 수감자입니다. 이 어두운 생활 중에 ‘오늘의 양식’은 저에게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양식’으로 편지를 제일 많이 보내는 분들이 바로 수감자들입니다. 종종 외국인 수감자들의 편지도 받습니다. 오늘의 양식에 영문이 병기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인데요, 제 아들이 군에서도 ‘오늘의 양식’으로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하네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때로는 군에서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는 멋진 청년도 있답니다.
“시각장애우입니다. ‘오늘의 양식’ 점자본이 있다는데 받아볼 수 있을까요?” 가장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순간이지요.
10만여 ‘오늘의 양식’ 독자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봉사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혹은 벅차게 만든답니다. 세상에서도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저희는 10만여 독자들과 영적인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셈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봉사자들이 오늘의 양식사에 10년씩 머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9) 지난 10월 초 ‘오늘의 양식’ 말씀입니다. 필자는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부요하고 충만한 삶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오늘의 양식사에서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감히 경험할 수 있다면 10년을 더 섬긴들 무슨 문제가 될까요. 오히려 축복이지요.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역지’ 오늘의 양식사를 떠나기 힘든 이유를 하나 더 찾았습니다.
또 다른 필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재능이 교회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이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같이 일을 할 때 우리의 몸은 계속 강해집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봉사자들은 한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만나도 서로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 ‘오늘의 양식’에 속해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자부심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천국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될 때 공동체와 개인이 고루 성장한다는 말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답니다. 봉사는 나를 다듬고 성숙하게 만드는 기회라고 하지요. 미약하지만 우리의 시간과 수고가 ‘오늘의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쓰일 때 우리가 먼저 성장하고 충실해지는 것을 경험한답니다.
이만 하면 진정 10년씩 청춘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닌가요? 어쩌면 앞으로 10년, 20년, 우리의 중년과 노년을 ‘오늘의 양식’에 더 바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 이미 그런 분들이 계시네요.
저희 ‘오늘의 양식’ 봉사자들이 주님의 귀한 사역 한 자락을 붙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남선희(집사, 할렐루야교회, 오늘의 양식 상담부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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